상현의 사는 이야기
The letter
가끔, 라디오에서 ‘편지’ 가사 노래가 흘러나오면 ‘찌르르’ 몸속에 전류가 흐른다.
나의 뇌리를 때리는 저 멀리 시간 속, 내 기억 저편에 아련히 떠오르는 아름다운 추억이 맴 돌아 나온다.
이장희 노래 [편 지]
편지를 썼어요 사랑하는 나의 님께
온 밤을 꼬박 세워 편지를 썼어요
간 밤에 쓴 편지는 보낼 곳이 없어~ Ha~!
조각배 만들어 강물에 띄웠지
때는 내 나이 27세, 한창 혈기 왕성한 시기에 밤늦도록 LP판을 들으며 책상에 앉아 백지에
무언가를 한없이 끄적거려도 답답한 마음을 전할 길 없었던 시절 이야기다.
백지에 한없이 써 내려간 유치하기 짝이 없는 글들을 보아줄 이 없는 깊은 밤에,
밤을 꼬박 새우며 써 내려가서는 새벽에 허공에 날려 보내던 날들이 있었다.
그런데, 하늘도 무심치 아니하여 나에게도 드디어 여자가 생겼다. 초가을 아침,
근무처 대전mbc 출근길에 올라 탄 시내버스 안에는 나만 왕따였다.
달리는 버스 안에 달랑 나 혼자 서 있는 거였다.
유성에서 시민회관 앞 회사까지 얼마나 먼 길인데?
버스의 맨 뒤를 마지막 희망으로 바라보니, 뒷좌석에 4명이라 약간 헐렁해 보였다.
나의 몸 하나 쯤은 끼워 넣을 수 있을 거라 여기며,
나는 천천히 체구가 아담한 단발머리 아가씨 앞으로 다가 갔었다.
속으로 “어여, 자리 좀 좁혀주소” 하고 서 있으니 그녀가 살짝 미소 지으며
엉덩이를 옮겨 나에게 조그마한 자리를 마련해 주는 게 아닌가?
그녀의 그런 친절한 배려에 따스한 엉덩이를 같이 걸치고 온 것이
훗날에 깊은 인연이 될 줄 그 누가 알았으랴? 무슨 운명의 끈이었던가!
이러한 인연을 27세의 젊은 싸나이가 그냥 지나친다는 건 바보다.
속으로 “그래, 그냥 지나치면 후회하리라” 생각하며 버스가 이리저리 기우뚱 하면
그녀의 작은 어깨에 나의 어깨를 밀착 시키고, 가재미눈으로 그녀 얼굴을 살폈다.
회사 버스 승강장에 내리기 전에 “이것도 인연인데..”
얼굴에 철판을 깔고 막 내릴 적에 전화번호 알려 달라고 했다.
회사에 도착 하자마자 외운 전화번호와 이름을 얼른 종이에 옮겨 쓰고,
숨을 가다듬고 두근대는 마음으로 전화를 했다. 그 곳은 다름 아닌
시사영어 TAPE 판매하는 곳이었다. 약간 찜찜한 느낌은 있었지만
모처럼 사귈 수 있는 기회였다. 그냥 편하게 만남을 이어갔다.
남녀가 자주 만나 마주보고 음식과 술을 먹다보니,
그것이 인연이 되어 정겨운 편지를 주고받았다.
서로의 만남의 횟수가 늘어나자 애정의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나는 그냥 알고 지내려고 했는데, 그녀가 나에게 관심을 보이는
것이 심상치 않게 보이자 정리? 단계에 들어갔다. 나, 의식 하지
말고 언제든지 좋은 사람 생기면 떠나도 좋다고 미리 사전에 연막을 쳐 놓았다.
버스 안에서의 짧은 만남이 10개월을 이어갔다.
더 이상의 변화를 보이지 않고 그냥 만나기만 할 뿐, 나는 다른 언질을 주지 않았다.
그녀는 점점 초조함에 마음이 조급해지고, 나와의 약속과는 다르게 은근히
나를 그녀에 대해 떠보는 횟수가 늘어났다. 결국에 비오는 늦은 여름 어느 날 저녁,
은행동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는 중 나의 결정적인 선언에
그녀는 눈물을 흘리며 밖으로 뛰쳐나가 버렸다. 비 오는 거리를 우산도 없이 말이다.
그 후엔, 그녀의 소식과 행방은 알 수가 없었다.
다음 해, 음력 1월 26일 나의 생일날 즈음에 나는 한통의 편지를 받았다.
무척 반갑고 뜻밖의 그녀의 생일 축하 편지!
그래도 그녀는 나의 생일은 잊지 아니하고 있었던 것이다.
헤어진 후에 그동안 얼마나 날 원망하고 또 미워하였을꼬.
“삼촌! 생일 진심으로 축하 합니다”
그녀는 나를 삼촌이라 불렀다. 4살 터울 많은 나를 편하게 부를 호칭으로 말이다.
너무 미안하기도 고맙기도 하는 마음에서, 행여 그녀에게서 다시 연락이 올까
기다려 보았으나 지금까지 소식이 없다. 서로가 주고받은 편지와 그 당시 일기장이 있었다.
84년도 6월경, 작은 상자에 넣고 테이프와 철사로 이리저리 꽁꽁 묶어
장롱 위에 고이 모셔두었다. 집사람이 그것을 애지중지 하는 걸 보았다.
“그 안에 뭐가 있기에 조심하게 다루어요?”
나는 “내겐 아주 소중한 거요. 내가 60세 환갑 되는 날,
그 속에 있는 편지와 일기장을 꺼내 읽어보고 미련 없이 불태울 거요.”
-> The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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