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 에세이~ 담배와 YJ
달마 이상현의 사는 이야기
담배와 YJ
“후~ 와, 맛있다. 바로 이 맛이야. 상현씨 고마워요. 호호호”
그녀의 작고 가녀린 오른손가락 하얀 담배 끝에서 흐느적거리며 둥근 전등 불빛 아래 가느다란
연기가 허공으로 피어오른다. 다시 한 모금 깊게 빨아들이며 눈을 감는 그녀.
갑자기 나에게 담배연기를 후~ 하며 불어놓고는 깔깔대며 웃는다.
연기를 맞은26살 녀석은 숨을 참고 빙그레 웃고만 있다. 녀석이 바로 나다.
때는 81년 12월 24일 X-mas 이브 날이었다. 장소는 유명한 전기구이통닭집.
대전극장 통 지하1층 안이다. 작은 탁자에 생맥주와 맛난 통닭을 놓고 재미난 이야기를 하던 중에
이 작은 숙녀는 자주 화장실에 다녀온다고 들락거렸다.
생맥주 한잔 쭉~ 들이 키고 통닭 쭈~욱 찢어 오물거리며 이야기하다가 또 화장실 간단다.
녀석은 숙녀가 올 때 까지 마냥 기다린다. 녀석은 눈만 껌벅거리고 생맥주 한 모금 넘긴다.
두어 번 화장실 다녀오더니, YJ는 반달눈에 미소를 머금으며 나를 빤히 바라본다.
딱, 한 가지 소원이 있단다. 들어 달랜다. 엥? 순간 X-mas 선물 사달라고 하려나 싶었다.
고개를 끄덕였다. 자기를 욕하지 말고 이해하여 달라며 큰 용기를 내어 말하려하니
꼭 들어주어야 한다고. 그래, 다 들어줄 거니 말해보라 했다.
화장실에서는 담배 피우는 맛이 없단다. 해서 맥주와 통닭 먹으며 이 자리에서 피우게
해달라고 간절한 눈길로 나를 바라본다. 당시 80년대에 일반 여성이 담배를 피우는 모습을
보기 어렵던 시절에, 그런데 그 장본인이 바로 내 앞에 있을 줄이야.
그녀는 주머니에서 담배와 성냥을 꺼내 능숙한 솜씨로 담뱃불을 빨았다.
침침한 공간에 빨간불이 타들어갔다. 연기를 허파로 빨아 깊숙이 넣고 코와 입술 사이로 나온다.
행복해 보이는 모습.
그 후에, 그녀는 마음 놓고 술과 담배를 즐기었다. 나는 열심히
술잔 따라주고 성냥불을 당겨주었다. 나와 가로 막은 벽이 허물어지자,
그녀의 지나온 삶을 가끔 밤늦도록 들어 주었다. 덩달아
나도 같이 몇 잔 소주를 홀짝거리고 담배를 꼬나 물며 말이다.
YJ는 1974년 영화 주인공“별들의 고향”경아였다. 한때 음악다방 DJ로도
유명세를 떨치던 아이였다. 별들의 고향 음악을 들으면 난, 항상 그녀를 떠 올린다.
우린 소설 속의 주인공이었다.
지난날의 자신을 보여주고는, 이런 여자였는데 사귈 수 있는가? 하며 되묻곤 하였다.
술과 담배. 그리고 내가 생각도 하지 못한 생활들. 겉으론 활달하고 화려한 모습
뒤편엔 어둠과 슬픈 과거.모두 끌어 안아주고 싶었다. 너의 지난날은 중요치 아니하다.
올바른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내가 도와주련다. 내가 필요하면 언제 어디서든 날 불러다오.
그녀에게 조건 없는 약속을 했다. 좋은 사람 만나서 떠날 시 까지 내가 너의 옆에 있어 주겠다고.
그 후, 나는 그녀의 Any-Call 이었다. 근무시간에 전화가 온다. 한잔하고 싶단다.
저녁 10시30분경 단골집에서 기다리라고. 당시 나는 숭전대학교 야간 1학년이었다.
나의 수업이 끝나야 만났다. 수업까지 농땡이 칠 수는 없었다. 밤길을 바지런히 달려가
만남장소에 가보면, 이미 그녀는 가끔 얼큰하게 취해있었다.
만남에 이은 다가올 이별은 너무나 어설펐다. 그 날, 82년 12월 31일 송년 기념으로
1차 단골 역전 별난집에서 오징어무침과 소주를, 수많은 이야기를 하며 추운 겨울밤
길을 걸어서 서대전국민학교 부근 포장마차에서 2차를 했다.
새로운 각오로 새해를 설계하여 우리 열심히 살아가자고 진지하게 말을 했었다.
나는 몰랐다. 항상 나에게 미안하게 여기며, 편해서 좋다고 고맙다고 하던 그녀가
‘열심히 살아가자’는 이 말에 이별을 생각 할 줄이야. 그 이유를 나중에 알았다.
그 후 소식이 뚝, 끊어졌다. 혹시나 하고 기다렸다. 사무실 전화벨 소리에 그녀 일거란
착각과 청랑한 목소리‘나~야’하며 웃는 소리가 귓가에 맴 돌아왔다.
어느 날, 발신지가 없는 그녀의 편지가 왔다. 대구란다. 그래 살아 있구나. 반갑고 고마웠다.
두근거리는 가슴을 달래며 읽어 내렸다. 그간 정말 감사했다고.
방황하는 자신을 위해 애써준 나의 행동에 고마움을 느끼며 떠난다고.
편지지에 또박 써내려간 4장의 구구절절한 사연. 떠나야 할 때가 와서 내 곁을 떠났단다.
좀 더 잘. 해. 줄. 껄.
얼마 전, 추억의 그 곳을 에세이 소재를 얻기 위해 겸사 지인과 들렀다.
80년 초부터 다니던 나를 기억하는 쥔장 할머니는 올해 76세란다.
그때 그 아가씨 잘 지내지? 미소로 물어본다. 아직도 우리를 35년 전 그 아이들로 기억해주는
고마움이다.그녀가 보내온 편지, 아직도 꽁꽁 묶인 철재박스에 보관중이다.
추억이 어린 일기장도 함께. 이제 지워져야 할 때인데. 추억의 음악과 그 거리를 지날 때,
아련히 스치는 그리움의 기억. 그것은 아마도, 나에게 작은 사랑이었나 보다.
->마침 2015.03.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