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미팅
(자료/영화 얄개시대)
때는 대전상고 2학년 1반, 계절은 12월 중순이었다. 무척 지루한 수업 후 쉬는 시간에
“친구야, 여학생 좀 만나 볼래? 너에게 소개시켜 줄께”반 친구 정남출이 날 보고 싱글 거리며 묻는다.
이게 갑자기 무슨 말인고? 순간, 귀가 솔깃하게 들렸다. 하지만 내 주제를 알아야 했다.
대한민국 평균 키에도 못되는 155센티 정도, 인물은 별로인 나. 거기다가,
고등학생 평균 나이보다 2~3살 많고 미팅조건에 여기저기 걸리적거려서 엄두도 내지 못하고
사는 나에게 소개팅 이라니? 그나마 작은 가슴이 콩 당~! 떨림을 느꼈다.
하지만 나의 작은 자존심이 먼저 튕기면서 일단 사양을 했다.
나는“아녀 별로여, 하고 싶지 않아”하며 슬쩍 일단 튕겼다.
친구의 얼굴이 잠시 당황한 빛이 스쳤다. 자기 여자 친구의 친구라며,
자기들끼리는 이미 이야기가 된 거란다. 그래, 언젠가 한번 길에서 친구와 만나는 모습을
잠깐 본 적이 있었다. 대전여상에 다니고 귀엽게 생긴 여학생으로 기억한다.
그런 여자 친구가 있는 남출이가 무척 부러웠다.
결국, 친구의 끈질긴 설득과 감언이설에 나는 마지못해 하는 척
수락했다. 그러더니, 당장 오늘 만나기로 했다며 같이 나가잔다. 무슨 번갯불에 콩을 볶나?
잠시 망설였다. 친구 왈, 누가 너 같이 생긴 녀석을 미팅하자고 하겠냐?
좋은 이미지로 이야기 해놓았으니 염려 말고 가자고 윽박지른다.
장소는 74년도 말에 대전천을 덮고 세운 중앙데파트 상가였다. 목척교 옆, 하천을 양쪽으로
복개하여 커다란 빌딩을 지어, 호텔과 각종 상가를 만들었다.
그 당시에는 최고로 좋은 新상가였다.
만남의 장소는 음식을 파는 1층 식당가였다. 저녁시간 때라 엄청 분비고 자리 잡기가 어려운,
용돈이 없어 가보지 못한 곳이었다.
먼저 약속장소에 도착한 우리. 친구는 나의 왼편에 앉았다.
눈을 껌벅이고 출입문 쪽을 힐끔 거리는 나는, 공연히 얼굴이 붉어지고 심장이 두근거렸다.
잠시 후, 날 보자는 문제의 주인공과 여자 친구가 검정교복에 자주색 책가방을 들고 들어선다.
남출이 여자 친구 보다는 약간 인물이 떨어 진, 얼굴엔 여드름이 잔뜩 하였다.
문득, 누군가의 말이 떠올랐다. 소개팅 할 시에
자기보다 못한 친구를 데리고 온다는. 나의 짝은 내 앞에 앉았다. 서먹한 분위기를 잠시 형식적인
인사로 친구는 이끌어 갔다. 그런데 나는 할 말이 없었다. 상대방 여학생은 내가 별로인 모양이었다.
나의 모습을 보고, 대단히 실망한 눈치였다.
헌데, 이 못생긴 여학생 폼을 보라. 갑자기 한 쪽 발을 다른 발에“턱”하고 영화 속 주인공
샤론스톤 같이 걸치는 것이 아닌가? 어랍, 이게 무신 행위인가? 여학생이 처음 본 자리에서
젊잖치 못하게 스리. 이건 날 아주 무시한다는 표시로 보였다.
그렇잖아도 어떻게 이 자리를 뜨는 게 좋을까? 복잡하게 머리를 굴리던 참인데 좋은 건수를
만들어 주는 거다. 차이기 전에 내가 먼저 차야 멋진 한수가 되는 거다. 기회는 찬스다.
벌떡! 나는 책가방을 들고 일어나며 “나는 갈겨”하고 총총히 나가 버렸다.
친구의 놀라움과 달려와 붙잡는 것을 과감히 뒤로 하고. 물론, 황당해 하는 두 여학생의
어처구니없는 표정은 알 수 없지만. 속으로는 얼마나 통쾌하던지 밖의 쌀쌀한 겨울날씨가
시원스럽게 느껴지는 것이다. 아무것도 먹지도 못하고 얼굴보고 인사한지 3분 안으로 결
판을 내 버린 것이다.
다음 날, 복도로 끌고 간 나에게 남출이가 얼굴색이 변하면서 묻는다. 어제 무슨 일이기에
그렇게 가버려서, 자기는 어떻게 당한지 아느냐? 하면서 도무지 무슨 영문인지를 모르겠다고
설명을 하란다. 난 당당하게 “응, 여학생이 건방지게 말이다. 의자에 앉자마자 다리를 꼬았잖아.
그것이 내가 즉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가버린 이유야”
생각해서 여학생 소개 해주면 감사하다고 해야 할 녀석이, 단지 다리 꼬고 앉았다는 그 이유 하나로
굴러온 호박을 발로 차 버리다니. 친구는 더 이상 할 말을 잃었다.
훗날, 이 악연은 또 만나게 되었다. 76년 봄날, 다리 꼬던 여학생을 유성 막내 이모 잔치 집에서 보았다.
그녀가 집안과 연관이 있는 게 틀림없다 싶었다. 이모 아들 용민 동생에게 살짝 불러 물어보았다. “
저기 서있는 여자 아이 말이다. 누구냐?”했더니
“우리 친척 누나인데, 왜?”묻는다.“아니야 그냥 궁금해서” 동생이 하는 말은 날 무척 놀라고
실망하게 했다. 그것은 바로“저 누나 날날이야, 바람둥이고”라는 말에 내 가슴은 쿵~ 하며 무언가
무너져 내렸다. 그래도 잠시 스친 인연인데, 작은 가슴에 커다란 구멍이 생긴 날이었다.
아, 허무함이여!
-> The 마침 2015.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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