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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 에세이~ 가출에 대해

나의 이야기

by 달마9981 2014. 10. 28.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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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마 이상현의 사는 이야기(가출).hwp

 

 

 

나의 가출에 대한 이야기

내가 태어나 장기간 가출한 사건이다.

찢어지게 어렵던 시절, 입 하나라도 줄여야 한다.

 때는 19691231일 이른 아침. 유난히도 하얀 눈이 많이 내린 그 해, 시골 유성읍 구암리 골목길.

눈 길 위를 자그마한 촌놈이 터덜터덜걸어간다. 꺼벙한 머리에 털신을 신고 옷 몇 가지 싼 보자기 하나 달랑 들고,

아무런 보장이 없는 미지의 세계가 있는 곳을 무작정 가는 나의 모습이란.

 

 

서울로 유성 촌놈이 모르는 사람에게 팔려서 돈 벌러 가는 날.

먼 길 떠나는 나를, 남은 식구들 배웅은 없었다. 그래도 한살 어린 동생 상철이가 졸졸 따라 나온다.

 “! 어디가?” 하는 동생을 뒤로 하고, “오지마주먹을 쥐어 보여 겁을 주었다.

리더 유성농고 선생님의 뒤를 따라 광주에서 유성으로 온지 겨우 보름 만에 나는 서울로 가는 것이다.

 

일단, 서대전 삼거리에서 내려 용두시장 골목길로 들어갔다.

조금 내려가더니 선생은 나를 우측 골목집으로 안내한다. 그 집에 촌놈 세 명이 모였다.

유성 상대리 촌놈, 논산 촌놈 그리고 나.

지금도 기억되는 서대전 삼거리 광고물 달나라 식당이다.

커다랗게 아치형으로 만들어 놓은 간판이다.

대전역서 촌놈과 선생님은 백마호라는 그 당시 등급이 좋은 기차로 서울로 갔다.

그 날, 기차여행 과정은 생각나지 않지만 중간에 간식으로, 홍익원의 삶은 달걀을 선생님은

 우리에게 먹으라고 했을 것이다.

 

 

 

서 울 역

~! 서울역이다.

말로만 사진으로만, 듣고 보고만 했던 서..

나는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서울이라는 거대한 도시 눈감으면 코 베어간다라는 서울에 드디어 도착.

19691231일 오후였다.

기억이 나는 건, 눈앞에 높게 놓여진 고가도로와 많은 차들, 오고 가는 많은 사람들, 크고 시커먼 빌딩 숲.

 

 

우리 일행은 수유리로 향했다.

우리를 인계할 어르신의 집에 저녁 무렵에 도착했다. 그 당시 눈이 엄청 많이 온 걸로 기억한다.

하긴 70년대는 정말 무지 추웠다. 그 날, 그 집에서 촌놈들은 6970년이 오가는 역사적인 하루를 보낸다.

19691231일 저녁. 나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그 날 밤 방송토크 쇼가 TV 흑백으로 나오는데,

오는 다음 70년도가 개의 해란다.

만화가 신동우 화백이 70이라는 숫자를 매직펜으로 큰 종이 위에다 쓱삭 슥슥하며 멍멍이

머리를 순식간에 그린다. 멍멍이 머리에 1970년도 숫자 그림으로 보여 준다. 저 양반 그림 참 잘 그리는구나!

 

이렇게 시작된 유성 촌놈의 가출 생활은 18개월이라는 세월 속에 흘러갔다. 자동차부속가게 자전거

배달원으로 구정설날과 추석명절만 빼고 낡은 자전거에 부속을 싣고 서울바닥을 누비고 다녔다.

힘든 고생도 많았고 서러운 날도 많았다. 하지만 적은 월급을 쪼개어 동생들 용돈과 학용품과 학생잡지를

 우체국에 달려가 집으로 보낼 적엔 기쁨이었다. 16세의 어린 나에 가출 아닌 가출이었다.

이러한 가출이 내게 주어진 앞날에 커다란 전환점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어릴 적 고생은 사서해라라는 누군가의 말이 떠오른다.

나의 가출은 착한 家出이라고 감히 외치고 싶다. The 마침.

 

 

 

 

 

달마 이상현의 사는 이야기(가출).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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